검색결과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93)

    93. 뜨거운 학구열 성철 스님이 대구 파계사 부속 성전암에 머물던 10년간 스님을 줄곧 모셨던 첫 상좌 천제 스님은 그 시절을 '외부와의 철저한 단절', 그리고 '뜨거운 학구열'

    중앙일보

    2001.10.12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92)

    92. 방대한 장서 참선을 강조하느라 늘 "책 읽지 말라"고 가르치던 성철 스님 본인은 정작 책을 아끼는 장서가이자 독서광이었다. 성철 스님이 거처를 옮길 때마다 한바탕 치러야 하

    중앙일보

    2001.10.11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91)

    91. 성전암 10년 칩거 성철 스님의 수행 중 가장 치열하면서도 오랫동안 계속된 정진은 단연 대구 파계사 부속암자인 성전암에서의 칩거 10년일 것이다. 성철 스님은 당시 격동하던

    중앙일보

    2001.10.10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(90)

    90. 봉암사 탈출 한국불교사에 한 획을 긋는 봉암사 결사는 6.25를 앞둔 불안한 상황에서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. 전쟁 발발 직전 빨치산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남북을 오가며 게릴라

    중앙일보

    2001.10.09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(89)

    89. 공주규약(共住規約) 성철 스님과 도반들이 '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산다' 는 취지에 맞춰 개혁불교의 틀을 갖추어가던 봉암사 결사. 그 정신을 오늘까지 생생하게 전해주는 문서

    중앙일보

    2001.10.08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8)

    88. 엄격한 봉암사 수행 봉암사 결사가 얼마나 엄격하고 힘들었는지는 당시 같이 살았던 노스님들로부터 거듭 확인된다. 서울 도선사 선원장인 도우(道雨)스님은 1943년 법주사 부속

    중앙일보

    2001.10.05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7)

    87. 모든 걸 다바꿔 경북 문경 봉암사에 모인 성철 스님 일행은 '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' 모든 것을 새로 만들었다. 성철 스님의 기억. "제일 먼저 비단으로 붉게 만든 가사들을

    중앙일보

    2001.10.04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6)

    86. 봉암사의 혁신 성철 스님은 1947년 한국불교의 정초를 잡기 위한 결사의 장소를 물색하다 경북 문경 봉암사로 결정했다. 당시 봉암사는 초라한 절이었지만 거대한 바위산인 희양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28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5)

    85. 성철-청담의 의기투합 성철 스님과 청담 스님의 의기투합을 잘 말해주는 사례를 묘엄 스님이 기억하고 있다. 두 큰스님이 함께 경북 문경 대승사에서 수행할 당시 직접 보았던 일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27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4)

    84. '역사선생' 역할 묘엄(妙嚴)스님은 56년이 지난 지금도 성철 스님이 자신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던 한국사 도표와 사미니계첩 등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. 그 도표(사진)를 보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26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3)

    83. 청담스님의 딸 1945년 해방이 되던 해에 성철 스님은 경북 문경의 대승사에서 수행 중이었다. 당시 성철 스님과 함께 수행하던 분은 수덕사의 말사인 정혜사에서 만난 청담(靑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25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2)

    만공스님과의 만남 성철 스님이 한국 근대불교의 큰 봉우리인 만공(滿空.1871~1946)스님을 만난 곳은 충남 수덕사의 말사인 정혜사(定慧寺)였다. 젊은 성철 스님은 만공 스님에게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24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1)

    81. 일타스님이 본 첫인상 1940년대 초 어느 봄 성철 스님이 전남 순천 송광사 삼일암으로 하안거(夏安居.여름 한철 외부출입을 않고 수행하는 것)를 지내러 갔다. 당시 그 절엔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21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80)

    80. 한문 편지 대독 ·대필 성철 스님은 1940년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오도송(悟道頌.깨달음의 노래)을 부른 뒤 곧바로 금강산 마하연으로 걸망을 지고 떠났다. 금강산 마하연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20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9)

    79. 큰스님의 '깨달음' 불교 서적들을 보면 부처님이나 유명한 고승들이 깨달음, 즉 오도(悟道)한 인연들이 많이 나온다. 예컨대 부처님은 보리수 나무 아래서 6년 동안 고행하다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9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8)

    78. 정진, 오직 정진 수도승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늘 전국의 선방(禪房)을 떠돌며 생활한다. 주로 겨울과 여름철 안거(安居)를 끝낼 때마다 옮겨다닌다. 1938년 성철스님도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8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7)

    77. 병중일여(病中一如) 성철 스님은 매우 건강한 체질이었지만 팔순을 전후해서는 기력이 쇠퇴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. 특히 겨울 백련암의 추위는 노(老)스님에게 힘들었다. 그래서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7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6)

    76. 백련암의 TV 1970년대 말, 성철 스님을 따르는 신도들의 모임을 이끌던 회장단이 TV를 한 대 사들고 와 성철 스님 방에 놓자고 했다. 성철 스님은 당연히 반대다. "나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4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5)

    75. 큰스님의 똥물 처방 산중에 살면서 가장 큰 문제는 땔감과 난방이다. 지금은 기름을 사용하지만 1970년대만 해도 전부 나무를 사용했다. 나무 구하는 일 역시 원주(院主.작은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3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4)

    74. 세번 묻고 답하기 제대로만 하면 떡을 찌는데 30분 정도, 길어야 1시간 이상 걸리지 않는다. 그런데 나는 거의 하루 종일 불을 땠는데, 떡쌀은 익지 않고 성철스님에게 꾸중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2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3)

    73. 시루떡 소동 선머슴으로선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하니 늘 탈이었다. 씨감자 사건으로 한 명뿐이던 일꾼 아저씨가 놀라고 다쳐 한 달 가까이 끙끙거리며 일을 못했다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1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2)

    72. 스승을 닮은 제자 성철스님의 은사인 동산스님이 상좌로 절집 생활을 시작한 성철스님에게 한 말이 있다. "잘 하려고 하면 탈나니 대강대강 사는 것이 대중살이다. " 깨달음을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10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1)

    71. 독초 소동 그 날도 장에 갔다가 혼자서 지고 메고 들고온 짐을 풀어놓고 땀을 훔치고 있었다. 그동안 별 말이 없던 성철스님이 다가왔다. "원주 시켜놓았디만 장똘뱅이 다 됐네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07 00:00

  • [남기고 싶은 이야기들] 산은 산 물은 물 (70)

    70. 쉽지않은 원주 노릇 원주 소임을 맡을 당시 백련암에는 스님들이 대여섯명 정도 같이 살고 있었다. 그러나 찾아오는 신도들의 찬거리까지 장만하려면 여기저기 열심히 들러야 한다.

    중앙일보

    2001.09.06 00:00